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타람 술탄국 (문단 편집) ==== 태자 및 장인과의 불화 ==== 아망쿠랏 1세는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거나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심지어 그 대상 가운데는 상술한 장인인 수라바야의 프킥 공과 아들인 태자 라맛(Raden Mas Rahmat)도 있었다. 왕은 여전히 건재한 수라바야 세력의 지지를 받는 프킥 공이 교묘하게 마타람 중앙의 지지를 얻어 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마타람의 실권을 쥐려 한다고 의심했다. 이 의심은 프킥 공이 태자가 사모하던 왕의 후궁 라라 오이(Rara Oyi)를 태자에게 데려가 취하게 한 사건으로 증폭되었다. 분노한 왕은 이 책임을 물어 1659년 마침내 프킥 공을 죽여버렸고, 태자를 용서하는 조건으로 라라 오이를 직접 살해하게 했다. 태자는 이를 수행하고 부왕의 용서를 받았다. 1660년대, 중앙에서 아망쿠랏 1세와 태자 라맛 사이에 암투가 벌어졌다. 아망쿠랏 1세가 다른 왕자를 태자로 봉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라맛은 선수를 쳐 반란을 일으켰으나, 부왕 아망쿠랏 1세는 태자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했다. 태자는 바뀌지 않았고 라맛은 이후로도 부왕의 표면상 용서를 받고 마타람 궁정에 남았으나, 물밑에서 왕과 태자 간 불신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1663년, 왕은 태자를 독살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